특집3 가을문화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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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3 가을문화역사기행
  • 하주성 기자
  • 승인 2018.09.1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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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장시(場市),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만나는 곳

우리의 장시(場市)는 역사(歷史)다. 그리고 장은 애환(哀歡)이다. 그런 우리의 전통 장은 정(情)이고 만남이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의 문화가 존재한다. 숱한 세월 속에서 장은 역사가 되고 슬픔이 됐으며, 즐거움과 문화가 공존했다.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 몸을 부딪기며 삶을 살아왔다. 전국에 산재한 수많은 장들이 그렇게 사람들을 그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영조 46년인 1770년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에는 ‘전국의 장시는 평안도 134, 함경도 28, 황해도 82, 강원도 88, 경기도 101, 충청도 157, 전라도 216, 경상도 278개소로 모두 1,064개소에 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순조 8년인 1808년에 편찬된 「만기요람 재용편 5 향시」조에 보면 ‘향리 밖에서 장을 여는 것은 한 달에 여섯 장인데, 1일과 6일, 2일과 7일, 3일과 8일, 4일과 9일, 5일과 10일을 이용한다. 송도는 방식이 서울과 같고, 경기도 102곳, 충청도 157곳, 강원도 68곳, 황해도 82곳, 전라도 214곳, 경상도 276곳, 평안도 134곳, 함경도 28곳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전국의 장시는 8도 327개 군, 현에 1,061개의 장시가 있다고 하였다.

그 후 순조 30년인 1830년에 편찬한 「임원경제지」에는 전국의 장시가 1,052개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의 장시는 꼭 5일장으로 서는 것은 아니었다. 만기요람에는 ‘길주 북쪽 삼갑의 각 고을에는 본래 장시가 없고, 민간인들 사이에는 평상일에 매매한다.’ 기록하고 있어 당시의 장시는 지역의 환경에 맞게 장이 개설된 것을 알 수 있다.

대목장, 그 안에서 돌아보는 우리의 역사

9월 24일은 추석이다. 흔히 명절인 설과 추석이 되기 전 2~3일 전에 장을 보는 것을 ‘대목장’이라고 한다. 대목장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장으로 모여든다. 요즈음은 백화점이나 대형할인점인 마트 등이 손님들을 끌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정이 깃든 전통 장시로 모여든다.

전통시장은 조선 시대의 상업 형태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 이전 고려시대에도 장의 기능이 있었다. 다만 서울의 시전과 난전을 비롯해, 중기 이후 각 지방에 개설된 장시로 인해 전통시장이 조선조에 시작이 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전통시장은 장에 서는 상설 점포 외에도 보상과 부상 등의 행상과, 후기에 등장한 도고와 명, 청, 일본과의 국제 무역 등의 다양한 장시가 있다.

우리나라에 시전이 처음 설치가 된 것은 조선조 태종 때부터이다. 서울의 종로통에 행랑이라는 관에서 주도하는 상가를 만든 것이 시전의 효시로 본다. 관에서는 이러한 점포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대여해 주고, 그들에게서 점포세와 상세를 징수하였는데, 점포세는 행랑세, 상세는 좌고세라고 불렀다. 이 시전은 궁중과 관부의 중요한 자금 조달원이었는데, 주로 독점적인 상점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당시의 기록을 보면 『성종실록 권 27』에는 성종 4년 2월에 「상설 상점의 설립은 백성들이 바라는 것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경인년(1470년)에 흉년이 들었을 때 전라도의 백성들이 서로 모여 상점을 열었는데, 그 이름을 장문(場門)이라 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그것에 의존하였으니, 이는 바로 지방에 상점이 만들어질 기미였다. 호조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지방 수령들에게 물었다.

그때 수령들이 그 이해관계를 잘 살피지 않고 전에 없었던 것이라는 이유로 모두 이를 막고자 했다. 나주목사 혼자만이 이를 금지시키지 말 것을 청하였으나 호조에서 금지시키고 말았다.」라고 적고 있다. 곧 전라도에서 흉년이 들어 처음으로 장시가 열렸다는 것이다.

『명종실록 권 6』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명종 2년 9월에 이황이 상소문을 올렸는데 「전에도 흉년이 든 해에는 장시를 금지하지 않고 백성들이 그곳을 토대로 하여 생활하게 함으로써 위급을 면하게 하였다. 지금 흉년을 당하여 장시를 모두 금지시키면 백성들이 입는 피해가 클 것이니 금지령을 철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라고 적어 흉년에 백성들이 서로 장시를 열어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백성들 간에 자유롭게 이루어지던 장시의 형태는, 임진왜란 이후에는 지역마다 정해진 장시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특징없는 전통시장 살아남을 수 없어

전통시장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전통시장은 그 자리를 한 곳의 환경에 따라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시장은 변화하지 않으면 자연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잡화시장 중 특성이 없는 시장은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기가 어렵다고 한다. 수원만 아니라 경기도 각 지역의 전통시장들은 지역에 무차별적으로 개점을 하고 있는 대형할인점이나 백화점 등과 무한경쟁을 치러야 한다.

요즈음에는 우리 전통 장시의 형태를 띠고 있는 장을 찾아가도 어디나 다 그저 그렇고 그런 상품들로 장이 채워지고 있어 정취는 사라졌다고 한다. 그나마 지역의 특산물을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드문드문 남아있는 5일장이고 보면 장이 살아남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통장시는 대형 슈퍼마켓이나 할인점 등에 밀려 점차 그 기능이 쇠퇴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정취가 있고 그 지역의 정서를 알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아직도 전통시장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장은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가장 잘 표출하고 있는 문화의 집산지이다. 장을 찾아가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늙수그레한 어르신들이 보따리마다 펼쳐놓고 파는 각종 곡물이며 산나물이 있고, 무공해 채소가 자리를 하고 있으며 자연산 민물고기도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런가 하면 오리나 닭, 강아지나 염소, 심지어는 별별 동물들이 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거기다가 지금은 찾아보기가 힘들지만 땜장이, 신발을 깁는 사람, 강냉이를 튀기는 사람, 대장간까지 장은 모든 종류의 직업을 망라해서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각종 의류는 물론이려니와 온갖 종류의 약품과 실생활에 필요한 가전제품, 또는 그릇과 직접 제작해 온 빗자루까지 하나하나 종목을 열거하자면 수천 종이 넘는 종류의 물건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팔려가기를 원한다. 왁자지껄하고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치면서 한 바퀴 돌다보면 허기도 지고 목도 컬컬해진다. 그러면 파전이며 각종 해장국에 국수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찐빵이며 직접 만든 만두까지 필요한 것은 다 있다. 날이 더우면 시원한 음료는 물론 텁텁한 막걸리까지 갖추고 있으니 이러한 것을 어디 가서 다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장은 우리네 삶의 모습을 다 모아놓은 직업전시관의 역할을 한다.

장은 역사와 문화가 결집된 곳이다.

시골의 작은 마을을 가면 인근에 장이 서는 날이면 마을이 텅 비어 버린다고 한다. 그만큼 장은 사람들이 살면서 필요한 것을 충당하는 장소로 애용되어 왔다. 그러한 장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장의 선술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사돈을 맺는 사람들이며 사돈끼리 만나 반가운김에 서로 한잔씩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그만 소를 바꿔 타는 바람에 서로 사돈집으로 갔다는 그런 옛 웃지 못 할 이야기는 우리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웃어넘길 수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그래도 시장은 모든 사람들의 교류의 장소로 이용되어진다. 이 곳에 가면 온갖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된다. 그래서 이웃의 대소경사나 집안의 모든 이야기가 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장은 정보를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사회는 물론, 경제, 정치, 문화 이 모든 정보가 장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그 곳에서 퍼져나간다.

수원은 장사는 역사다. 그리고 문화이기도 하다. 대목장을 앞두고 찾아가는 곳마다 축제가 열리고 있다. 대목장에서 한 몫 잡자는 뜻도 있다. 장으로 사람들이 모여야 판매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올 여름 유난히 무더웠던 날씨와 바닥경제로 인해 수원의 시장이 받은 피해가 컸다고 한다. 그런 가라앉은 분위기를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려고 노력들을 한다. 수원의 곳곳에 산재해 있는 전통 시장은 바로 우리의 역사고 문화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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