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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힘이다.
하주성 국장

일본이라는 나라 참 가증스런 나라이다. 한편으로는 우방인체 하면서도 또 다른 이면에는 이해할 수 없는 짓거리를 너무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읻. 한 마디로 겉 다르고 속 다른 표맂부동한 나라란 생각이다. 일본 전체가 합당을 하여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고 그것도 모자라 독도가 자기들의 영토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독도의 내력은 일찍부터 기록에 오르내린 울릉도와 관련지어 살펴보아야 한다. 본토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6세기 초(512) 후였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512)년에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울릉도라는 명칭이 정착됨에 따라 그 부속 도서인 독도로 우산이라는 명칭이 이동하게 되었다. 조선 1432년 (세종 14)에 편찬된 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서도 「우산, 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正東)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동해상에 무릉과 우산의 두 섬이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1531년 (중종 26)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 울릉도 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다.

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을 담은 『장한상 울릉도사적기』를 펴냈다. 이것은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 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생히 입증하는 것이다. 18세기에 나온 정상익의 『동국지도』에 이르러서는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었으며, 조선 후기의 지도첩에는 으레 울릉도 옆에 우산도 또는 자산도를 표기하고 있다. 일본 스스로도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인정한 자료가 줄을 잇는다.

이와 같이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은 일고의 논란의 여지가 없이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심하면 한번 씩 불거져 나오는 것이 독도의 소유권이다. 그럴 때마다 각종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수 없이 많은 애국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정말 갑자기 무슨 애국자들이 그리도 많은 것인지,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애국자들이 있었는지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라사랑의 뜻을 갖고 주소를 사람이 살기도 어렵다는 독도로 옮겨놓고 자신들의 사재를 털어 독도를 지키고자 하는 독도수비대도 있다. 그런데 정말 가관인 것은 딴 때는 독도에 대한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 꼭 이런 일만 일어나면 TV 화면을 통해 열을 올리면서 침 튀겨가며 애국자인양 하는 무리들이다. 그것도 알만 한 사람들이니 더욱 볼썽사납다. 그리고 서둘러 독도를 방문한다, 독도에다가 엄청난 비용을 들여 시설을 해야 한다고 난리들을 친다. 왜 한 번도 아니고 벌써 몇 번 씩이나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그럴 때마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각설하고, 어디 이런 일이 독도뿐이겠는가? 일이 일어날 때마다 저마다 침을 튀겨가면서 열을 내는 일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기저기서 흡사 3,1만세 운동을 보는듯한 열기를 보여주는 우리 자랑스러운 민초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것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어려울 때 하나가 되게 하던 <판>이 아니겠는가하는 생각이다. 판은 우리 민족에게는 모임의 장소요, 공동체의 산실이다. 이 판 안에서 우리들은 하나가 되었고,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면서 나라사랑과 충, 효, 예를 키웠던 것이다.

판에는 놀이가 있고, 춤이 있고, 소리가 있고 우리가 있다. 그 판을 벗어나면 우리는 없고 오직 나만 있을 뿐이다. 작금에 들어 모든 전통문화예술이 무대를 지향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판을 잃어버렸다. 그 판을 잃어버리고 나면서 어떻게 변했을까? 어우러짐 보다는 내가 먼저 잘나야 하고, ‘우리’보다도 ‘나’가 먼저인 그런 사고를 지니게 된 것이다.

하기에 우리는 이 판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어려운 난관을 극복해 낼 수 있는 판. 이 판이 다시 복원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큰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36년이란 긴 세월동안 일본의 압박에서 벗어난 것도 결국 우리민족이 하나가 된 판으로 인한 것이었다. 장터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마을에서.. 우리는 판을 만들고 그 안에서 무한한 우리민족의 저력을 키웠던 것이다. 이제 다시 그 판을 복원시켜 잊었던 ‘우리’를 되찾는 길만이 우리가 올바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본다.

하주성 기자  rja4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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