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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성 기자 칼럼능소화, 그 아름다움 뒤에 맺힌 한(恨)

요즈음 길을 걷다 보면 담장 위에 넝쿨을 느리고 아름답게 꽃을 피운 계절의 꽃을 만날 수 있다. 6월 말경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능소화. 8월까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능소화는 중국이 원산지인 갈잎 덩굴나무이다. 능소화는 담쟁이덩굴처럼 줄기의 마디에 생기는 ‘흡반’이라 하는 뿌리로 건물의 벽이나 다른 나무에 붙어가며 타고 오른다.

능소화를 ‘어사화’라고도 부른다. 장원급제를 한 사람의 화관에 꽂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양반꽃’이라 하여 상민들이 이 꽃을 심으면 양반을 모욕했다는 죄로 붙들려가 곤장을 맡기도 했다. 이 능소화를 ‘구중궁궐 꽃’이라 부른다. 이렇게 부르는 것은 능소화에 얽힌 슬픈 전설 때문이다. 능소화의 꽃말은 ‘영광’과 ‘명예’이다. 왜 이런 꽃말이 붙었을까? 그것은 능소화에 얽힌 전설에서 알 수 있다.

아주 오랜 전 ‘소화’라는 아름다운 처녀가 살았다. 이 아가씨가 궁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아름다운 자태 때문에 임금의 눈에 띄어 빈이 되었다. 임금은 소화에게 처소를 마련해주었지만 무슨 연유인지 그 후 발을 끊고 소화를 찾지 않았다. 소화는 천성적으로 마음이 착한 여인이라 임금이 찾아오기만을 날마다 기다리고 있었다.

소화는 담장 밑에서 밤을 지새우며 서성이고는 했다. 혹 밤늦게라도 임금이 찾아왔는데 발자국 소리를 못 들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소화는 결국 병이 들고 말았다. 날마다 식음도 전폐한 채 임금을 기다리다 병이 든 것이다. 결국 소화는 숨이 넘어가기 전 “나를 담장 가에 묻어라. 혹 내일이라도 임이 오시면 기다리고 있겠다”라고 유언을 남겼다.

소화의 유언에 따라 시녀들은 소화를 구중궁궐 담장 밑에 묻었다. 그런데 소화가 임금을 기다리다가 죽은 계절인 여름이 되면, 아름답게 꽃을 피우면서 담장 밖으로 넘어가는 한 식물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꽃을 ‘능소화’라고 이름을 붙였다. 임금을 기다리다가 숨진 소화. 그리고 오매불망 그리던 임금이 보고 싶어 죽어서도 담장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던 열망. 결국 소화는 그렇게 아름다운 꽃으로 환생을 한 것이다.

영광과 명예, 아마도 임금의 눈에 들어 빈이 된 것이 ‘영광’이요, 남들처럼 요사를 떨지 않고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다 목숨을 잃은 것이 ‘명예’가 아닐까? 능소화는 시들어 떨어지지 않는다. 얼마 동안 피어 있다가 꽃잎이 통째로 떨어진다. 양반꽃이라고 하는 능소화가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였나 보다. 능소화가 이렇게 담장을 타고 오르는 것은 이유가 있다.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 담장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능소화. 그 능소화를 보면서 깊은 상념에 잠긴다. 도대체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왜 소화처럼 그런 단심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일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남이야 어떤 아픔을 당하던지 관계없이 악한 일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 오늘 능소화 앞에 서서 고개를 떨어트린다. 나 역시 그런 부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하주성 기자  rja4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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